유비, 관우, 장비를 필두로 진행되는 삼국지 즉, 위 촉 오 시절 때 그 옆에 있던 우리 한반도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오늘은 저 위촉오 때 우리가 고려였나, 조선이었나 이것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국지가 시작하는 연대는 후한 말 시기 황건적이 난무하였던 184년쯤부터 진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켜 삼국을 통일했던 280년까지로 잡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상황의 대해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삼국시대
184년부터의 시기를 기점으로 저희 한반도는 백제, 고구려, 신라로 이루어진 삼국시대였습니다.
백제
이때 백제의 왕은 5대 초고왕부터 8대 고이왕까지의 시기였습니다. 저희가 아는 13대 왕인 근초고왕과는 다른 왕임에 주의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초고왕은 백제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받으며 8대 고이왕은 율령 반포, 6 좌평 제도 정비 등 나라의 체계를 잡히게 한 왕입니다. 그 사이에 있던 6, 7대 왕은 딱히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신라
이때 신라는 아직 왕이라는 이름의 통치가 시작되기 전인 세 개의 가문에서 나라를 돌아가며 통치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 때 신라에선 뭐 크게 중요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주변 국가인 가야의 세력들을 야금야금 먹으며 몸을 불려 나갔다곤 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기틀닦고 자기 몸 불려 나가는데 급급한 것과는 다르게 삼국지의 이야기가 돌아가는 데에 꽤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즉, 중국 쪽 지역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지리적으로 바로 붙어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시기 때는 첫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9대 왕 근초고왕을 시작으로 13대 왕인 시천왕 까지가 삼국지와 겹치게 됩니다. 이 왕들 중 삼국지 시대와 가장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 것은 11대 왕인 동천왕입니다.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지 알아봅시다. 당시 위나라와 오나라는 계속된 경쟁 속에서 오나라가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위나라와 근접해 있던 요동에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하지만 요동에서는 이를 거부하였고, 사신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오나라 사신들이 고구려로 몸을 숨기게 되고 이 과정에서 오나라와 고구려와의 자연스러운 동맹관계가 형성되게 되죠. 이때 왕이 바로 동천왕인 것이죠.
하지만 동천왕은 자신의 나라와 맞대어 있는 요동을 견제하는 것이 더 우선적인 과제라고 여겼는지, 오나라와의 동맹을 접고 위나라와 손을 잡게 됩니다. 양각을 보려고 손을 잡은 것이죠. 위나라와 손을 잡게 되면 그와 경쟁 관계에 있는 오나라와는 당연하게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죠. 그렇게 4년이 지나고 나서 위나라는 결국 요동을 정벌하여 자신의 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된 상황이 된 걸까요? 바로 고구려와 위가 딱 국경을 맞대고 있게 되겠죠. 이제 위나라와 고구려와의 경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동천왕은 비옥한 영토인 요동을 위나라가 먼저 가져가 버린 게 안타까웠던지, 요동 쪽 지역을 얻기 위해 여태까지 친하게 지내던 건 싹 입 닦고 바로 선빵을 날리게 되죠. 요동의 서안평 지역을 친 것입니다.
당연히 위나라는 여기에 대응을 하게 되겠죠? 관구검이라는 장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시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동천왕 때 일어난 서안평 전투입니다. 결국 동천왕은 관구검에게 패배하게 되고 환도성이 함락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되죠.
하지만 위나라는 중국 내부의 싸움에 더 신경 쓰느라 더 고구려를 침략하여 완전히 먹어버리는 데에는 큰 신경을 쏟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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